믿음

25.1.5 -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bepuri 2025. 1. 5.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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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3:10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올 한 해는 매주 주일 설교말씀과 함께 내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카테고리를 신앙이나 종교와 같이 하지 않고, 믿음이라고 해둔건..

믿음이라는 것 자체가 어떤 행위를 하는데의 본질이 되기 때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믿는 바를 글로써 정해보려고 한다.

 

나는 교회에 출석하기 전부터 교회의 쇠락이 교회에서 드러내는 모습의 결과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교회에 부정적인 선입견이 있었고, 교회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믿음이 더욱 견고해짐에 따라 교회에서 드러나는 부패한 모습과 세상과 전혀 다를바 없는 탐욕적인 모습 또한

그들이 연약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 또한 그런 존재이다.

 

나는 그러지 않을거라 확언하는 사람들도 상황이 변하면 무너지기 쉽고, 고결한 인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하며, 소수의 공동체가 변화한다면 개개인 또한 변화하기 쉽다는 사실 또한 간과하면 안된다.

 

그러기에 오늘 말씀도 교회의 본질로 돌아가자는 담임 목사님의 설교가 이어졌다.

나는 그 목소리 속에 가득 차 있는 비통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함께 힘을 내어 나아가자고 소리쳐 외치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작은 것 중 하나는 오늘 말씀을 나라도 먼저 진심으로 마음 속에 새기고 올 한해는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음심을 본받는 것일 것이다."

 

1. 교회의 정의

 

엡 1:23

-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 그리스도는 머리시고 교회는 몸이다. 몸안의 지체는 각 성도다.

 

완전히 똑같은 개인은 없고, 몸안에 지체중 완전히 똑같은 지체도 없다. 손가락의 지문하나하나 보더라도 모든이가 다르다. 그러기에 각 지문은 지문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도 각 지체의 고유한 역할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게 목사님은 작게는 '순모임'이라 표현하셨다.

 

2. 교회의 목표

-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 보여주는 공동체가 되는 것

 

목사님이 표현하신 것처럼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지,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 하신 것에 대해 나는 공감한다

 

하지만 반면에 사역자 입장에서는 기존에 해오던 많은 일이 있는데, 그 일 중 덜어내도 되는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이런 일들이 자연스럽게 모든이들이 함께 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방법을 묻는다면 방법은 사실 모르겠다.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들은 다음세대 교사들은 항상 부족하다는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다음세대는 줄어드는데, 교사가 왜 부족할까.

다음세대에게 너무 많은 것을 가르치려 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하다.

때론 이런 생각도 든다.

 

다음세대 교육이라는 것이 차라리 사라지고, 아이들이 좀 시끄러워도 소리쳐도 담임목사님 설교 중에 쌩뚱 맞은 질문이 오고가더라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공통 예배가 있다면.. 어떨까?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내가 여유가 없으면 누군가를 돌보는 것은 정말 어렵다.

하나님 나라를 이뤄나가려면 내가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

작년 한해 동안 유치부를 섬기면서 느낀 것이다.

아무리 내가 많은 사역을 해도, 내가 이걸 했어요 저걸 했어요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소원하는 사랑이 넘치는 마음으로, 내 눈에 밟히고 내가 주님이 하신 것처럼 목숨을 걸고 이것은 내가 해야겠다.

이것이 주님이 내게 새생명 주신 것에 대한 이유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건 내게는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교회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관계 속에서 힘든 분들을 위로해주는 것

교회 밖에서는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분께 복음을 전하는 것

 

이것 또한 일이 되면 안되고 사랑으로 나의 진심이 드러나야 된다 생각한다.

일이되면 기계적으로 하게 되고 기계적이 되면 마음이 담기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때론 힘들면 쉬어야 되고, 쉼을 통해 회복하고 나를 사랑으로 충만케 한 뒤

여유가 있을 때 사랑을 전해야 상대가 온전히 그 사랑을 받고 나의 의도를 왜곡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3. 교회는 어떻게 예수님을 보여줄 수 있는가?

- 평화 / 사랑 / 섬김 / 희생 등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준 가치를 세상에 보여주는 것

 

이것을 세상에 제대로 보여주었다면 교회는 발디딜 틈이 없을정도로 많은 사람이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나도 사실 세상에서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하겠으나,

모든이를 사랑하고, 모든이를 섬기고, 모든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내가 아는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고, 내가 아는 이웃을 섬기고, 이웃을 위해 내가 가진것을 나눌 수는 있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교회 안보다는 밖에 관심이 많았다.

교회 안에서는 수십명의 성도가 있는 교회가 아닌 이상 시스템화 되어있고, 그 시스템 안에서 체계적으로 교회는 돌아간다.

 

교회의 온 성도가 교회 모든 일을 버리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고심 한 뒤, 백지에서 시작하지 않는 이상 기존의 돌아가던 교회 시스템 안에서 비슷한 체계로 비슷한 사역을 비슷한 사람들이 해나갈 것이다.

 

하지만 교회는 일하러 오는 직장이 아니다.

직장은 마음이 불편해도, 사랑이 없어도, 섬기는 마음 없이도 서비스 해줄 만큼만 해주면 된다.

돈 받은 만큼만 해줘도 고객은 불만이 없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돈을 주고 서비스를 해줄 종업원을 구한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목숨을 통하여 우리에게 새생명을 주신 것이다.

우리의 전심과 온몸을 원하신다.

 

그것을 우리는 잊으면 안된다.

그것을 기억하고 우리의 전심과 온몸을 주일예배를 넘어서 우리의 전생에 동안 드러내고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안되는데 어쩌냐고..?

그렇기에 그 길을 함께 가고 있는 교회 공동체에서 순모임과 같은 모임을 통해서 묻고 나아가야 한다.

 

 

4. 그리스도를 알고

엡4:

13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경지에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온 성도가 하나 되어야 함.

 

완전히 공감한다.

하지만 여러차례 이야기 했듯, 무언가를 믿고 아는 것도 영육간의 여유가 없으면 힘들다.

물론 영육간의 여유가 없어도 그것을 이겨내고 해내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매우 드물다.

이걸 교회 차원에서도 어떻게 성도가 잘해낼 수 있게 도울 것인가를 고민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이걸 이렇게 합시다"라는 차원을 넘어서, 이전의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하나됨"을 위해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뭐냐고 물으면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로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보면 방법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한다면 느릴지라도 우리는 더욱더 하나되어 갈 것이고 그러다보면 새순에서 다른교회로 교회가 다시금 회복하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 믿는다.

 

나의 교만일지 모르지만, 목사님의 설교로 끝나버린다면 내년의 새순교회는 몇년뒤의 새순교회는 비슷한 실정일 것이다.

단 소수의 몇명은 바뀔지 모른다. 다만 그것은 소수에 지나지 않을 뿐이며, 교회 전체로서는 변화가 거의 없을 것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치열하게 개혁해야한다.

어쩌면 세상의 시스템에 물들어버린 종교를 다시금 뒤업는

새로운 종교개혁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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